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는 한국에 어떤 의미인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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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전력하는 속셈

유럽이 탄소중립을 주도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외치는 배경에는 기후변화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당위가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유럽 산업계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유럽은 수력을 제외한 재생에너지 비중에서 가장 앞서 있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비율이 41.6%, 영국 38.9%, 포르투갈 54.7%, 스페인 38.1%, 이탈리아 40.6% 등이며, 지금도 이 숫자는 증가세에 있다. 따라서 유럽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많은 사업 경험과 기술을 축적하며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

일례로 영국은 2010년 전후 석탄 화력발전이 발전량의 약 40%를 차지했지만, 현재는 석탄의 완전한 퇴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국은 이 과정에서 약 10,000기 이상의 풍력 발전기를 설치했다. 독일과 스페인도 영국과 비슷한 수준의 풍력 발전 비중(약 20%)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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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efn_note]제시된 유럽국가 중 프랑스를 제외하고, 모두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40% 내외의 비중을 보인다. 오직 프랑스의 재생에너지 비중만 21.3%로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상대적 비중이 작을 뿐,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절대량을 따지면 영국과 비슷하고, 이탈리아보다 약간 많다. 이는 프랑스가 항공, 방산, 자동차 등 중공업이 발달해 있어 타 유럽국보다 절대적인 전력 소비량이 많기 때문이다.
전력 소비가 많은 탓에 프랑스는 1970년대 이후 원자력 발전에 집중해왔고, 2019년에 69.4%의 전기를 원자력으로 충당했다. 프랑스는 사실상 원자력(69.4%), 신재생(21.3%), 가스(6.8%)의 조합만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석탄 발전 비중은 1%에 불과하다. 프랑스는 프랑스만의 방식으로 저탄소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EU의 주축인 프랑스가 탄소중립 기조에 동조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파리 기후협약은 프랑스에서 체결되었다.) 프랑스의 메이저 석유회사 Total도 탄소중립 관련 사업으로 성장성을 확보하려는 대표적 회사 중 하나이다.[/efn_note] 이탈리아*[efn_note]프랑스와 대조적으로 이탈리아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없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모든 원전 운영이 중단되었고, 2008년 이후 원전 건설을 검토하였으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백지화되었다. 대신 이탈리아는 재생에너지(40.6%)와 가스 비중(48.6%)이 매우 높다. 또한 이탈리아는 EU 내에서 가장 많이 전기를 수입하는 나라인데, 주로 접경하고 있는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전기를 들여와서 부족분을 충당하고 있다.[/efn_note]

20세기 최대 교역상품은 석유였다. 국제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석유였고, 세계 경제는 석유를 동력으로 움직였다. 한국의 수입 품목 중 단연 1위도 원유이다. 석유를 확보한 나라는 가장 큰 부와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유럽 석유회사들은 20세기 초반 중동에 가장 먼저 진출해서 석유를 발견하고 개발을 주도했다. 이후 그것을 발판으로 엄청난 부를 창출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소위 ‘자원 민족주의’의 대두와 산유국의 자체적인 개발 역량 개선에 의해 중동 석유를 지배하던 시절의 영광을 포기해야 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BP, Shell, Total, Eni 등 유럽의 주요 석유회사는 대형 석유회사로 나름의 입지를 확보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1970년대 이후 계약 체계 변경과 개발 권한의 축소 등으로 산유국에서의 이권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산유국의 국영석유회사에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었다. 게다가 유럽의 텃밭인 북해의 석유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지금은 1990년대 말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특히 풍력 분야는 유럽 업체들이 독주하고 있다. 풍력 분야에서 독일과 스페인 합작사인 Siemens-Gamesa와 덴마크의 Vestas, 두 업체가 세계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중국 업체인 Sewind가 따른다. 미국의 GE(General Electric)도 풍력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유럽 업체와는 현격한 점유율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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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장기적으로 본다면 재생에너지는 과거 석유가 차지했던 ‘상품의 왕’ 지위를 이어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유럽 기업들이 선도적으로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재생에너지 확대 여론 형성에 힘쓰는 것은 기후변화 대처라는 시대적 당위뿐만 아니라, 성장 동력 확보라는 경제적 동기도 갖는다. 유럽 산업계는 재생에너지, 특히 풍력 부문에서 비교 우위에 있고 그 능력을 펼칠 우호적인 시장 여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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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유럽의 풍력 기술은 미국, 일본, 한국 등에 비해 다소 앞서 있다. 그런데 기술력의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유럽 풍력 산업의 자본과 인력 규모 등이 다른 국가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유럽과 다른 나라의 ‘초격차’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기술력의 차이보다는 저변의 차이다. 유럽에서는 과거 석유 메이저라 불리던 기업들이 대거 재생에너지 산업에 진출하면서 유럽은 질뿐만 아니라 양(Capacity)에서도 앞서 있다. 구체적으로 노르웨이의 국영석유회사였던 에퀴노르는 2035년까지 16GW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고, 이탈리아의 Eni는 2035년까지 25GW, 프랑스의 토탈은 2025년까지 35GW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efn_note]WoodMackenzie(2020), ‘The Edge: The Euro Majors’ big bet on new energy’, 2020.12.3.[/efn_note]

그리고 유럽 최대의 석유회사인 영국의 BP는 2030년까지 석유 가스 생산량은 40% 줄이고, 재생에너지 50GW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렇게 유럽의 석유 기업이 종합에너지 업체로 변신을 시도하는 이면에는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이슈가 지구촌의 지속적 이슈로 존재하면서 시장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

IEA에 따르면 2019년 한해에만 전 세계에서 태양광 발전 100GW, 풍력 발전 60GW, 총 160GW의 재생에너지 시설이 추가되었다.*[efn_note]IEA, Global Energy Review 2020: the impact of the COVID-19 crisis on global energy demand and CO2 emissions, 2020, p.35[/efn_note] 2021년 이후로 설치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 에너지정보업체 우드맥킨지는 2020년부터 향후 10년간 매년 250GW의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신규로 건설되리라 예측했다.*[efn_note]WoodMackenzie(2020), ‘The Edge: The Euro Majors’ big bet on new energy’, 2020.12.3.[/efn_note] 현재 석탄,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을 모두 포함한 한국의 총 발전설비 용량이 약 125GW이다. 우드맥의 전망은 매년 한국의 2배 수준의 전력 설비가 재생에너지로만 추가된다는 것이다. BP의 에너지 전망 보고서는 한발 더 나아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300GW의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설치되고, 2030년 이후에는 매년 500GW가 설치된다고 했다.*[efn_note]BP의 시나리오 중 중위값이 Rapid 기준이며, Net-zero 시나리오에서는 2025년 이후부터 매년 500GW씩 추가되고, 이후에는 900GW씩 추가된다고 가정했다.[/efn_note]

BP는 바로 이러한 예측 하에서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유럽 시장은 재생에너지 설비가 각국 발전량에서 30~40%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만을 무대로 이와 같은 계획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은 미주와 아시아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을 기대한다. 이미 에퀴노르, BP, Total 등은 한국 등 아시아에 진출해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우드맥킨지의 예측대로 매년 250GW의 재생에너지 설비가 추가된다면 매년 수백조 원의 자본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설령 예측치의 절반만 이루어진다고 해도 엄청난 산업이 열리는 것이다. 이러한 재생에너지 시장을 두고 유럽, 중국, 미국이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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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 출범 후, 파리 기후협약은 다시 힘을 얻을 것이다.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파리기후협약 당사국 회의에서는 더 강한 탄소 배출 감축과 규제를 참여국에 요구할 것이다. 세계 각국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재생에너지를 늘려가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스스로의 자본과 기술과 인력으로 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따라서 풍력 등 재생에너지 시설의 설계, 개발, 설치 등에서 전문 기술을 보유한 유럽 업체들이 시장을 과점하며 과거 세븐 시스터즈의 영광을 재현하려 할 것이다. 과거 유럽 석유 업계는 해외 석유로 성장의 사다리를 놓았다. 이제 유럽은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새로운 사다리를 놓고 있다. 빨리 놓을수록 다른 나라들이 따라올 수 없다. 후발국들은 먼저 출발한 유럽이 새로운 형태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할지 걱정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2. 바이든 정부가 그린뉴딜을 외치는 이유

세계 최대 산유국이면서 석유 이권을 놓고 전쟁도 불사했던 미국이지만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준비는 유럽과 중국보다 많이 뒤처져 있다. 풍력은 유럽에, 태양광은 중국에 우위를 내주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석유 산업의 우위를 통해 경제 호황을 이끌었다. 미국이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유럽과 중국 업계의 성장을 방관한다면, 향후 거대한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미국의 몫은 작아질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상황을 파리기후협약 탈퇴라는 카드로 무마하고 시간을 벌려고 했다. 즉, 석유 증산을 통해 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을 늦추면서 이 분야의 비교 열위를 상쇄했다.

에너지 전환은 문명의 전환이라고 할 정도로 거대한 변화이다. 따라서 관련 산업 분야에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크다. 에너지원을 바꾼다는 것은 에너지 생산, 운송, 저장, 보급, 충전 등 모든 기반 시설을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내내 미국 테슬라가 전기차 분야의 성장성으로 주가가 급등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배터리 및 배터리 소재 관련 업체의 주가도 크게 올랐다. 전기차와 배터리 사업의 무서운 성장세는 재생에너지 사용도 그만큼 확대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테슬라도 태양광 사업을 주력 사업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전기차와 배터리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에너지 시스템에서 아주 작은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재생에너지가 중심인 세상에서 배터리 분야가 하나의 ‘깃털’이라면, 재생에너지 사업 자체는‘몸통’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의 그린뉴딜은 몸통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다.

3. 한국의 도전

한국 정부는 2020년 12월 발표된 ‘제5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태양광과 풍력을 크게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1.3GW인 풍력발전 설비는 2034년까지 24.9GW로 약 19배로 늘어날 예정이다.*[efn_note]산업통상자원부, ‘제5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 2020.12. p.49[/efn_note] 현재 전국에 약 560여 기의 풍력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단순 산술 계산으로 19배를 늘리기 위해서는 현재 설치된 560기의 풍력 발전기가 19배인 약 10,600기로 늘어나야 한다. 한국의 대표적 풍력 시설인 대관령 풍력단지에 53기의 풍력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러한 풍력 단지가 약 190개 더 생겨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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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00기의 풍력 발전기는 거대하지만 이미 외국에서는 실현된 숫자이다. 앞서 언급한 영국은 2020년 기준 10,930기의 풍력 발전기를 운용하고 있다.(발전 용량 기준으로 24.1GW이며 이를 통해 자국 발전량의 약 20%를 충당한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대선 캠페인 당시 약 60,000여 기의 풍력 발전기를 새로 설치하겠다고 했다.

물론 한국은 국토 면적이나 풍력 자원 면에서 앞서 언급한 나라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조절할 필요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이 목표한 풍력 설비 용량 24.9GW와 이와 상응하는 10,000기라는 숫자는 터무니없는 숫자가 아니라 감당해야 하는 숫자가 되어가고 있다. 다행인 점은 지금껏 설치된 풍력 발전 터빈은 대부분 2MW 이하였지만, 앞으로 4~8MW급도 많이 사용될 것이라는 점이다. 터빈 용량이 커지면 단위면적당 발전량이 많아진다. 두산중공업은 2022년까지 8MW급 터빈 개발을 완료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efn_note]‘5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 12~20MW의 터빈 개발이 가능하도록 R&D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따라서 훨씬 적은 수의 터빈으로 목표한 발전 용량이 가능할 수도 있다.[/efn_note] 따라서 10,000기가 아닌 그 절반 이하의 숫자로 목표한 풍력 발전 설비가 가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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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에너지 역사의 데자뷔

2034년까지 계획된 풍력 발전 용량 24.9GW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년 1~2GW의 풍력 발전 설비를 신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매년 수조 원의 자본이 투자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이 사업을 수행할 저변이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이미 오스테드, 에퀴노르, 토탈 등이 한국에서 풍력발전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2020년 11월 덴마크 풍력 발전업체인 오스테드사는 약 1.6G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해상 풍력 단지를 인천 연안에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비는 약 8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를 비롯해 국내에서 추진 중인 풍력 사업 프로젝트의 상당수는 해외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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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하게 해외업체가 한국의 풍력 자원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 모습은 과거 산유국이 자국의 석유 자원 개발을 서구에 위탁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석유 자원’이 ‘풍력 자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해외업체가 우위에 있는 역량을 가지고,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신속하게 목적을 이루게 해준다면 양쪽에게 win-win이 된다. 그것이 국가 간에 무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에너지는 일반적인 상품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안보와 관련된 분야이다. 따라서 이 분야의 자주적 역량은 경제성과 별개로 확보해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해외업체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더라도 국내 업체와 상생하며 고용을 창출하고 관련 기술과 경험을 공유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이익대로 움직일 것이다. 덴마크의 에너지기업 오스테드는 2020년 11월 인천 연안에 대규모 풍력단지 조성을 발표하는 기자 회견에서 두산중공업의 풍력 발전용 터빈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답변을 회피했다. 오히려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많은 부문을‘현지화’해야 한다는 점을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efn_note]Money’s(2020), ‘국산화 외친 ’오스테드‘, 두산중공업 터빈 왜 안쓰냐 질문에..’, 2020.11.25.[/efn_note] 석유 사업이 그러하듯 외국 업체가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더라도, 그 수익 배분과 국내 업체와 상생 정도는 협상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협상력은 한국의 재생에너지 사업 능력에 비례한다. 한국의 기술, 자본, 인력이 유럽의 그것에 근접해서 한국의 선택지가 더 많은 상황에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낼 수 있다. 반대로 자국의 풍력 자원을 개발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판매자가 우위에 있는 사업 환경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초기 석유 개발 역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석유 자원의 주인이었던 중동이나 남미 산유국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기업이었다. 이로써 산유국은 자국의 석유 자원을 이용한 사업에서 수익을 서구 기업과 반분하는 계약을 수십 년간 지속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미국과 유럽의 석유회사들은 급성장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중동의 석유는 20세기 후반 서구의 성장 동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산유국들은 초기에는 발견된 석유의 소유권마저 서구 기업에 내준 채 일방적으로 로열티만 받는 형태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것이 이후 생산물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변해갔다. 석유 개발 역사 초기에 중동 산유국이 자국의 석유 자원을 스스로 개발하고 판매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 스스로 그것을 할 수 있는 기술과 자본, 그리고 인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5. 중요해진 에너지 기업의 역할

정부는 2030년까지 한국을 세계 5대 해상풍력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올바른 비전이다. 국토가 좁고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해상 풍력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옵션이다. 사실 한국은 할 수만 있다면 태양광도 바다에서 해야 할 실정이다. 비용이 문제이지만 당장의 비용은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석유가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의미를 잃는다. 또한 급속히 커지는 시장만큼 비용 절감 속도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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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한국은 해상 풍력 분야에서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여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풍력 관련 업계는 협소한 시장과 소규모 인력으로도 높은 수준의 능력을 확보했다.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더 빨리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이다. 풍력 발전의 핵심인 터빈과 블레이드 분야는 아직 유럽과 차이가 있지만, 풍력 발전기 기둥과 하부 구조물 제작에서는 세계 정상급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해상 풍력은 조선업과 관련이 깊다. 과거 북해유전을 개발하던 석유업체들이 오늘날 풍력 발전의 선두 주자가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유럽 에너지 기업들은 북해 원유 생산을 위한 해양 플랜트 사업과 함께 성장했으나, 2010년 이후 조선 해양플랜트 산업이 위기를 맞는다.

이로 인해 높은 실업률과 경기침체 문제가 나타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적극적인 해상 풍력 육성 정책을 시행했다. 이후 해상 유전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한 풍력 발전을 도입하는 등 해상 원유 생산시설을 건설하던 석유 기업과 조선업체의 능력이 이들을 해상 풍력의 선두로 이끌었다. 노르웨이의 국영 석유회사였던 에퀴노르사는 오늘날 대표적 풍력 발전 업체가 되었고, 석유 개발 업체였던 덴마크 오스테드사도 세계적 풍력 사업자가 되었다.

이런 면에서 동해-1 가스전 등 다수의 해상 유전 개발 경험을 보유한 한국석유공사와 국내 중공업 업체의 협조는 의미 있는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2020년 9월 두산중공업, 현대중공업과 MOU를 체결했다. ‘동해 1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사업 한국형 공급체계 구축 상호협력에 관한 협약’을 통해 향후 해상 풍력발전 분야에서 협조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세진중공업, 우리기술 등 풍력 발전공급 체계에 있는 기업들과도 협력하면서, 석유공사는 한국형 풍력 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지향하며 해상유전 운영 경험과 조선업·중공업 역량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6. 나오며

석유라는 주요 에너지가 아직 건재한 상황에서 이제 새로운 전선에서 에너지 안보와 이익을 향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의 형태가 다를 뿐 산업의 동력이자 일상을 유지하는 필수재라는 점은 석유와 다르지 않다. 즉, 석유가 전략 물자라면 풍력과 태양광 자원 역시 전략적 성격이 있다. 따라서 한국의 재생에너지 사업은 에너지 자립도와 에너지 안보를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향후 엄청난 규모로 성장할 재생에너지 시장이 한국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도 이 분야의 역량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시장에 내버려 두기에는 자본, 기술, 저변에서 세계 수준과 격차가 있다. 따라서 한국석유공사가 이 분야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며 국내 기업과의 협조 체계를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는 한국에 엄청난 도전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미리 시작해서 그 노력과 비용을 분산시키고 기술과 경험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해외 사례에서 보듯 석유 기업과 조선 등 관련 중공업 업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은 관련 분야에서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소가 걸음을 떼듯 재생에너지를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2021년 소의 해를 맞아,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를 대하는 자세에 맞는 말은 ‘우보천리(牛步千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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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 과장 - 한국석유공사 에너지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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